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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明鏡止水의 어원과 의미 그리고 찬사

by 옥토쌤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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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어원과 의미는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사념없는 마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거울이 계속 맑으려면 자주 닦아줘야 합니다. 안경을 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안경 역시 수시로 닦아줘야 깨끗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고요한 물은 어떤까요? 물은 자체적으로 고요합니다. 셀프 평온합니다. 돌멩이 하나 떨어뜨리면 파문을 일으키지만 금새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물은 평온하게 만들기 위해 거울처럼 닦아줄 필요가 없습니다.

 명경지수 明鏡止水의 어원

明 : 밝을 명
鏡 : 거울 경
止 : 그칠 지
水 : 물 수

《장자(莊子)》 덕충부편(德充符篇)에 나오는 말이다. 노(魯)나라에 죄를 지어 다리를 잘린 왕태(王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 수와 같았다. 공자의 제자가 그에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까닭을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사람은 흘러가는 물에는 비춰 볼 수가 없고 고요한 물에 비춰 보아야 한다. 오직 고요한 것만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물론 《장자》의 다른 부분과 같이 장자 자신이 공자의 말을 빌려 하는 형식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신도가(申徒嘉)는 형벌을 받아 다리를 잘린 사람으로 정자산(鄭子産)과 함께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었다. 정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하였다. "내가 먼저 나가거든 자네가 머물러 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머물러 있음세." 이튿날 같은 방에 자리를 함께 하고 있을 때 정자산은 또 신도가에게 말하였다. "내가 먼저 나가거든 자네가 머물러 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머물러 있기로 하세. 지금 내가 나가려고 하는데, 자네는 머물러 있겠는가, 나가겠는가. 또 자네는 집정(執政) 하는 나를 보고도 피하지 않으니 자네도 집정하는 나와 같단 말인가?" 이에 신도가가 말하였다. "선생님 문하에서 집정이란 세속적 지위가 문제가 되는가? 자네는 자기가 집정임을 내세워 사람을 무시하고 있네. 듣건대 거울이 밝으면 먼지가 끼지 못하고, 먼지가 끼면 거울이 밝지 못하네. 어진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하네(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 則無過). 세상에는 잘못을 변명하는 사람은 많으나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받는 죄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네" 하며 정자산을 꾸짖었다.

이와 같이 명경지수란 본래 무위(無爲)의 경지를 가리켰으나 후일 그 뜻이 변하여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찬사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가까울까요? 물보다는 거울에 가까울 겁니다. 부단히 닦아주지 않으면 금새 더러워집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엔트로피의 법칙이라는게 작용합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이란 모든 것들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살면 황폐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고, 삶은 끝내 망가지기 십상입니다.  스스로를 아끼고 바르게 잘 살려고 애쓰면 자신을 비추는 거울 역시 점점 맑아지게 됩니다.

거울보다는 물에 가까운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일부로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자정작용을 합니다. 의도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평온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에게도 여러가지 심적 상태가 존재하겠죠. 무릇 떨어지는 돌멩이가 크면 클수록 부딪히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파문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높아진 파도만큼이나 다시 잔잔한 수면상태로 돌아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물은 언젠가는 기어코 고요한 수평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중국 당나라 시대 선종의 5조인 홍인(弘忍)이 제자들에게 깨달음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자 수제자로 인정받고 있던 신수(神秀)가 말했습니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다.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가 붙지 않도록 해야 한다."

스승인 홍인을 비롯한 제자들은 신수의 말을 인정하고 칭찬했습니다. 절간 부엌에서 일하다 이 게송을 들은 혜능(慧能)은 글을 아는 동자를 불러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쓰게 합니다.

“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도 대(臺)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먼지가 붙겠는가?”

신수는 명경(明鏡)을 말했고, 혜능은 지수(止水)를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혜능이 불법을 계승했습니다만, 명경이 없는 지수가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 지수임은 분명합니다.

거울은 쉽게 더러워집니다. 깨지기도 쉽습니다. 오래전에는 유리거울이 아니라 청동거울이였을테니 쉽게 찌그러졌을겁니다. 그러면 거울에 비친 모습 역시 찌그러져보이겠지요. 찌그러진 것은 평평하게 다시 펴기 쉽지 않습니다. 펼 수는 있겠지만 힘이 많이 들겁니다. 더러워지면 닦고, 찌그러지면 낑낑거리며 펴야 하고, 깨져버리면 엄청난 좌절이 찾아옵니다. 이야기하다보니, 거울에 비친 나, 그리고 그 거울은 에고(ego)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에 반해 물은 시간이 걸리지만 스스로 본연의 상태로 돌아옵니다. 이것을 일종의 회복탄력성으로 관념으로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공(空)의 상태로 보는 것이 적절할 듯 합니다. 비어있기에 품을 수 있고 다시 채울 수 있는 거지요.

물의 삶, 결국 이것이 깨우친 삶이 아닐런지요? 추석연휴도 끝이 났고 이제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우리의 삶 역시 크고 작은 파문을 잔잔히 어루만지는 물과 같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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