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으로 잠 못 드는 밤 비는 오지 않고 다시 불면증이 도졌습니다. 한 달쯤 된 것 같습니다. 잠들기 어렵고, 간신히 잠들어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좀 자나 싶어도 두어 시간 후 완전히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원래 잠 못 자는 DNA 보유자로서 이미 수년 전에 이골이 날 정도로 불면증을 겪어보았지만, 다시 찾아온 이 불한당 때문에 일상을 영위하는 게 참 고달프네요.
불면증에 시달리다 원인을 찾다
어린 시절 간혹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무슨 번민으로 잠을 안 자고 뒤척였는지 그 당시의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배게를 들고 부모님 방을 노크하곤 했습니다. 부모님 사이에 누워서 두 분이서 도란도란 대화하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곤 했습니다. 될 성 부른 잎은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예민했던 기질은 커서도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잠을 설치는 날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다 특별한 원인 탓에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었고 대부분의 날들은 수면에 큰 지장 없이 살아왔습니다.
몇 년전 오랜 기간 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2013년 말부터 2017년까지 3년이 넘는 기간이었습니다. 지독히도 힘들었던 날들도 많았고, 해볼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았지만 불면의 늪을 빠져나오기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작용했던 것 같지만, 그중 굵직한 원인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질과 노화의 문제입니다. 이 나이(마흔즈음)에 벌써 노화를 얘기하는 것이 이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몸 여기저기에서 노화의 징후들이 나타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기질적으로 예민한 터라 본격적인 불면증이 시작되기 전에도 곧잘 잠을 잘 못 자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면증이라는 병증이 싹틀만한 토양은 따로 있는 셈입니다.
가장 중요한 정신적 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불면증에 불을 붙히는 도화선이라고나 할까요. 정신적인 문제가 극복되거나 해결되지 않으면 불면증 자체를 치료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신적인 문제로 불면증이 심각해지면, 뇌는 학습효과로 인해 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불면증 그 자체가 병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피폭당한 상처들은 시일이 지나면서 사라졌습니다만, 불면증은 오히려 더 심해지더군요. 사실 그 정신적 상처들은 제 마음 어딘가에 내재화되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 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찌 되었든 정신적 문제는 육체에 그대로 전이되고 끝내는 몸의 불균형을 초래합니다. 흔히 얘기하는 교감신경, 부교감신경의 불균형입니다. 불면증으로 불균형이 생겨서, 다시 불면을 일으키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몸의 불균형은 40대에 들어서면서 진행되는 노화와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몸이 변화하는 과도기에 적응을 하느라 약간의 몸살을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시기가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유독 심하게 드러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춘기와도 같은 마흔 앓이는 중년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정도가 클수록 더 심해집니다. 일반적으로 어려서부터 신체의 변화에 민감한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이 이런 변화에 더 취약하다고 합니다.
불면증의 3대 증상
불면증의 3대 증상이 입면장애, 수면유지 장애, 조기각성인데 입면장애와 수면유지장애는 숙면에 좋다는 모든 규칙을 준수하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가 있는데, 조기 각성 이 녀석은 무던히도 절 괴롭히더군요. 2~3시간 자고 새벽에 깨서 잠 못 이루고, 며칠 못 자면 한 4시간 안 죽을 만큼 자고 - 이런 날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햇볕을 쬐면서 오전에 운동하고, 대추차를 마시는 등의 민간요법으로는 해결이 안 되더군요.
불면의 증세가 한달정도 지속되면 불면증이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불면에 시달리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일한 코스를 거칩니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좌절을 맛볼 때 흔히 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음주입니다. 하지만 불면증 환자에게 음주는 첫 끗발이 개끗발일 뿐입니다. 초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불면증이란 녀석이 알코올에 대한 내성을 가져버리면 더 이상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잠은 쉽게 들 수 있지만, 머리가 아픈 채로 조기각성하는 어리석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다음 코스는 결국 다른 많은 불면증 환자들이 그러하듯, 일상의 파괴를 막고자 어쩔 수 없이 정신과를 찾게 됩니다. 인지행동 치료 같은 상담적 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게 됩니다. 제 경우 그렇게 1년여를 약으로 버티다가, 과감하게 약을 끊고 다른 방법들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양약은 억제책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그냥 뇌를 마비시켜서 억지로 잠이 들게 하는 거죠. 그리고 보통 정신과에서 불면증을 치료받으면 우울증 증세가 없음에도 우울증 약도 같이 처방해 줍니다. 저 역시 불면증이 너무 심해지니 자연스럽게 우울증이 찾아오더군요. 어찌 되었든 양약은 단기적인 임시책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양약을 끊은 다음, 무지무지하게 비싼 한방치료 및 한약도 오랫동안 먹어보고, 신통방통하다는 점집인지 한의원인지 모를 곳도 물어 물어 찾아가 보기도 했고, 온갖 영약(?)들을 다 복용해 보았습니다. 양약을 통한 일시적인 억제보다는 근본적인 치료를 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불면증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한의원들이 꽤 많이 성업 중인데,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비싼 만큼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지만 가성비는 그리 좋지 않은 듯합니다. 온갖 민간요법 및 수면에 좋다는 건강식품은 다 시도해 본 듯한데,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효과가 괜찮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박하진액이었습니다. 불면증 환자들에게는 낮 시간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하는 신경안정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불면은 뇌가 과도한 각성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모니터를 오래 보거나,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은 불면의 지름길입니다. 카페인이야 커피를 안 먹으면 되지만, 대부분의 직업 특성상 모니터를 안 볼 수는 없으니, 청색광(Blue Light) 차단이라도 하고, 업무 중 의식적으로 눈을 쉬려고 노력하고, 자기전에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는 것으로 악영향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햇볕을 많이 쬐는 것도 중요한데, 이것도 사실 그렇게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골에 가서 안빈낙도의 삶을 살면 됩니다만, 정말 방법이 없는 경우 아니면 선택가능한 옵션이 아니겠죠.
불면증은 일상생활에 이루 말할수 없이 심각한 지장을 줍니다. 잠 못 이루는 밤 그 자체에 대한 고통은 어느 정도 불면증에 시달린 사람이면 쿨하게 넘길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생활에 주는 심각한 장애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뇌는 부족한 수면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의 몸은 어떤 상황이든 적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뇌는 메모리(memory)를 지우고 클럭(clock)을 낮추는 등 자구책을 강구하게 됩니다. 고성능 컴퓨터에서 동작속도가 느리고 기억용량을 떨어뜨린 386 컴퓨터로 다운그레이드(downgrade)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업무 및 학습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심한 경우 인지기능에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회사에서 무능력한 직원이 되고, 학교에서는 열등생이 됩니다.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어지지만, 겉으로 멀쩡해보이니 아무도 그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의 고통은 남이 아파해 줄 수 없는 법입니다. 다른 질병도 그렇겠지만, 불면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이해받고 위로받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왜 그딴 것(불면증)에 걸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곤 합니다. 열심히 운동을 해보라는 둥 떠들어 댑니다만 하등 도움도 안 되고 감정만 안 좋아지게 되죠.
불면증에 대처하는 방법
제가 생각하는 불면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생활습관 개선이고 두 번째는 자기 전 본인만의 의식입니다.
무엇보다도 불면을 유발하는 음식은 피해야 합니다. 카페인은 물론이고, 홍삼에 들어 있는 사포닌도 불면유발을 한다고 하더군요. 숙면에 좋은 것들은 박하, 상추, 우유 등이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좋으나, 자기 전 4~5시간 전에는 운동을 마쳐야 하며, 격한 운동은 몸을 흥분시켜 수면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낮시간에 햇볕을 쬐며 많이 걷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눈을 아껴야 합니다. 눈은 간과 연결되어 있으며, 눈으로 들어온 인공빛들은 뇌간망상체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모니터를 장시간 보는 직업이라면 주기적으로 눈에 휴식을 주어야 하며, 청색광(Blue Light)을 차단해야 합니다. 청색광 차단방법은 차단필름 등을 써도 되지만, 그냥 프로그램으로도 가능합니다. 스마트폰 앱 및 PC용으로 쓸만한 무료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모니터는 자기 두 시간 전부터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낮 시간의 왕성한 활동이 숙면을 부릅니다. 이는 수면이 체온과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요. 통상 낮시간동안은 체온이 올라가고 밤시간에는 체온이 내려가므로, 낮시간동안의 활발한 활동으로 체온이 높아지면, 이후 체온이 내려가면서 수면에 용이한 몸상태가 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체온의 최고점과 수면중에 내려가는 최저점, 그 차이의 체온 변동을 진폭이라 하며 이 진폭이 크면 숙면을 하게 되고, 이 진폭이 작아지면 숙면을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생각이 깊고 예민한 사람들은 평균보다 이 진폭이 작다고 합니다. 이 진폭을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 낮시간에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수면시간으로 볼 때 수면 유형은 크게 장시간 수면자와 단시간 수면자(6시간 이하)로 나뉜다고 합니다. 통상 단시간 수면가들은 행동가들이고, 장시간 수면가들은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장시간 수면과 단시간 수면을 나누는 것은 수면시간보다는 수면의 질과 관련이 있습니다. 수면의 질이 좋으면 적게 자도 피곤을 안 느끼지만,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아무래도 오래 자면서 에너지를 채우려는 것이죠. 이렇듯 수면 효율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수면 패턴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면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두 시간전부터 본인만의 취침의식에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취침의식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수면을 위해 환경과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자기기를 끄고, 조용한 환경을 만들고, 형광등 대신 스탠드를 켜고 침대가 아닌 특정 장소(편하게 앉을 수 있는 곳)에서 정적인 활동을 수행합니다. 책을 보던지, 종이 위에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 하루 계획을 세우던지,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든지 몸과 마음을 교란시키거나 흥분시키지 않는 그 어떤 것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고통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내구성이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기 마련이니, 과거에 홍수를 겪고 다시 튼튼하게 보수했던 댐도 오랜 세월이 흐르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과거의 잠못이루던 밤을 잊어버리고 막살다 보면 요즘도 가끔은 잠 못 드는 밤을 맞이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불면이 제게 주는 신호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다시 살아갈 몸과 마음의 자세를 추스르게 됩니다. 마냥 잘 자는 사람에게 잠이란 그냥 하루를 구성하는 일부분일 뿐이지만, 잠 못 드는 고통을 아는 이에게 잠은 근원적인 행복입니다. 더 놀지 못해 아쉬운 일요일 밤 모두 푹 주무시고, 건강한 한 주를 맞이하시길.
다시 읽어보니 참 피곤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잘 자는 복을 타고 나신 분들은 부모님께 감사하시기를!
모두 굿잠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