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도서의 책소개로 오늘날 세풀베다의 작품은 전 세계, 특히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여러 작품에서 확인되듯 무엇보다 그의 소설이 쉽고 빨리 읽힌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이나 선과 악에 대한 작가의 분명한 이데아를 바탕으로 단순한 테마와 복잡하지 않는 플롯 그리고 짧은 분량에 무수한 에피소드가 삽입되면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기존의 소설에서 찾기 힘든 환경이나 생태계 문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테마가 얼마든지 픽션으로 형상화될 수 있고 문학 작품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도서의 책소개
『연애 소설 읽는 노인』(1989)은 행동하는 지성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긴 여정 같은 자신의 생활을 통해 보고 들은 한 인간의 삶을 예민하고 감수성 넘치는 언어로 형상화한 소설이자, 개발이라는 미명을 내세운 인간들에 의해 그 처녀성을 유린당하고 있는 아마존을 위한 서사시이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여러 에피소드들이 단편처럼 흩어져 암시처럼 전개되다 어느 순간에 한 사건으로 집중되고, 그 순간부터 인간과 동물의 싸움으로 압축되면서 극적인 긴장감과 함께 대절정에 이르는 작품이다. 긴 밀림의 우기, 하늘이 보이지 않는 원시림, 동물들의 울음 소리, 사람들의 움직임, 강물 흐르는 소리, 그 사이로 파고드는 문명의 소리가 화음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의 모습을 상상하는 동안, 얼핏 우리의 노인과 비슷한 인물, 즉 바다로 나가 기나긴 기다림 끝에 거대한 <말린>과 사투를 벌이고 마침내 뼈만 앙상한 노획물과 함께 돌아오는 노인 산티아고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노인이 치렀던 싸움이 결국은 물고기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벌임으로써 도전하는 자만이 해낼 수 있다는 <위대한 인간의 승리>를 확인했다면,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가 치러야 했던 암살쾡이와의 싸움은 늙음 앞에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니라 본질적인 삶의 근원 ― 밀림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이란 그 자체일 뿐이라는 원주민인 수아르 족의 말처럼 ― 을 찾아 나선 행위이며, 그 행위를 통해 오로지 승리만을 좇는 오늘날의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위선에 찬 존재인가를 깨닫게 만든다.
저자소개 루이스 세풀베다 (Luis Sepulveda)
1949년 칠레에서 태어난 세풀베다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행동하는 지성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외에도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쳤는데, 특히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작품이 많다. 젊은 시절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세풀베다는 칠레를 떠나 유럽으로 이주해 독일, 스페인 등에서 살았다. 2020년 COVID19로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 고래를 보호하는 환경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세상 끝의 세상》, 《연애 소설 읽는 노인》, 《귀향》,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감상적 킬러의 고백》,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등이 있다.
최근작 : <[큰글자도서] 세상 끝의 세상>,<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특별판)>,<세상 끝의 세상>
발췌문
"노인은 수아르 족 인디오의 말을 떠올리며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죽은 짐승의 털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노인은 눈물과 빗물에 뒤범벅이 된 얼굴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짐승의 시체를 끌고서 강가로 나갔다. 그는 그 짐승의 시체가 우기에 불어난 하천을 따라다시는 백인들의 더러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거대한 아마존 강이 합류하는 저 깊은 곳으로 흘러가길 바라면서, 그리하여 영예롭지 못한 해충이나 짐승의 눈에 띠기 전에 갈기갈기 찢어지길 기원하면서 강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노인은 느닷없이 화가 난 사람처럼 손에 들고 있던 엽총을강물에 던져 버렸고, 세상의 모든 창조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그 금속성의 짐승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의사 선생님, 좋은 술을 마시면서 얼굴은 왜 찡그립니까? 그래도 이 술이 창자 속에 든 기생충을 죽인다는거 아닙니까.」노인은 술병을 받아들면서 우거지상을 짓고 있는 치과 의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선착장 끝에 앉은 그들의 시야에 카누 두 척이 다가오고있었던 것이다. 카누에는 축 늘어진 채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의 금발이 얼핏 드러나 보였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노인은 느닷없이 화가 난 사람처럼 손에 들고 있던 엽총을강물에 던져 버렸고, 세상의 모든 창조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그 금속성의 짐승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