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현역 정걸 장군 도서의 책소개로 《기업가 문익점》에 이은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의 두 번째 역사경영에세이. 이순신 정신을 교육하고 선양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서울여해재단의 이사장인 저자는 자타공인
‘이순신 전문가’지만, 이순신을 비롯한 주변 조력자를 찾는 작업 또한 충실히 진행하고 있다.
80세 현역 정걸 장군 도서의 책소개
그 중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정걸 장군이다. 부족한 사료를 대신해 전해오는 이야기와 신도비 등을 뒤져 정걸의 성품을 추측하고, 흩어진 기록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전후 관계를 파악하고, 정걸의 고향이자 주 무대였던 고흥에 직접 찾아가 현장을 살피는 등 그의 생애를 한 권의 책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정걸 장군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1부와 2부는 정걸과 이순신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계기와 그들을 이어준 또 다른 인물들, 닮은꼴 같은 두 영웅의 모습에 주목하여 31년의 나이 차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3부와 4부는 임진왜란과 행주대첩 승리에 큰 도움을 준 정걸의 업적에 대해 서술하고, 5부에서는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걸에 대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말해준다. 정걸과 이순신과 관련된 주요 유적지에 대한 정보가 포함된 부록은 마치 여행서를 보는 듯하다. 독자에게 역사적 사실과 함께 실용적인 정보까지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한 구성이다.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가 그 수많은 전쟁을 혼자 치렀다고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충무공 이순신의 곁을 지키고 함께 왜적에 대항한 이들에 대해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관심하다.
주변적이고 부수적인 것들의 이야기는 항상 주목받지 못하고, 가치를 고려해볼 틈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역사를 빛낸 모든 이들을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모두를 기억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이순신의 손과 발이 되어준 정걸 장군에 대한 역사적 사료와 기록을 모두 모은 《80세 현역 정걸 장군》은 그런 의미에서 집필되었다. 정걸 장군은 이순신 장군보다 한 세대나 앞선 인물이지만, 여든의 나이까지 임진왜란을 비롯한 전쟁들에 참전해 승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업적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저자소개 윤동환
한국콜마(주) 회장. (사)서울여해재단 이사장. 경영학 박사.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역사학자와 저널리스트를 꿈꿨으나 가정형편상 경영학과에 진학하였다. 첫 직장인 농협중앙회를 거쳐 대웅제약에 재직하며 기업인의 꿈을 세웠다.
그 꿈은 1990년, 화장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인 한국콜마를 설립하며 이루었다. 이후 화장품 업계에서는 최초로 ODM(제조자개발생산)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부문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직원들이 오래 머무는 회사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직원 교육에 늘 관심을 두고 있다. 창업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국민훈장 동백장과 다산경영상(창업경영인 부문)을 받았고, 2015년 ‘대한민국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한국경영인협회), 2018년 ‘한국의 경영자상’(한국능률협회), 2019년 ‘최우수 기업가상’(언스트앤영, EY)을 수상하였다.
역사와 인문학을 접목한 창업정신과 경영을 바탕으로 한 《우보천리 동행만리》는 당장 눈앞에 있는 성과와 겉치레보다 원칙과 본질을 중요시하는 경영철학과 한국콜마의 독서 경영, 인재 경영 등을 담았다.
최근작 : <우보천리 동행만리>,<조선을 지켜낸 어머니>,<80세 현역 정걸 장군>
발췌문
정걸은 1514년 흥양(지금의 전라남도 고흥) 출생으로 문과 집안의 자제였으나 무과에 지원하여 급제했다. 이순신과는 무려 31년이라는 나이 차가 나지만 일흔일곱의 나이에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경장(조방장)이 되었다
조방장이란 주장主將을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로, 현대적 의미로 보면 실무총괄책임자COO와 같다.
한 세대 아래인 이순신에게 지휘를 받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걸은 겸손과 지혜의 덕목으로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으로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고, 풍부한 경륜과 지혜로 실질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정걸의 도움이 필요했던 까닭은 조선 시대 곡창지대였던 충청도와 전라도의 제대로 된 수비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고향인 흥양 땅의 지리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정걸은 그야말로 최고의 적임자였다.
정걸은 조선 수군의 주력함이었던 거북선과 판옥선을 개량하고 건조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군선에 대포를 장착해 위력을 발휘하게 하기도 했다. 흥양 선소에서 전선 건조와 수리, 발포·녹도·사도·여도의 군사 훈련, 수군 후방의 전비 물자 관리까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전쟁의 후방을 든든히 지켰다.
노획품 관리와 포로로 잡혀 온 왜적의 관리 문제까지 고된 일들을 도맡았다. 흥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정걸이 임진왜란의 상황에 따라 ‘계책에 맞게 호응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음은 《충무공전서》에 기록된 사실이다.
또한 부산포해전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우고, 행주대첩에는 떨어져가는 화살을 실어 날라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물자가 부족한 전란 속에서 2만 개의 화살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전쟁의 승패를 가를 만한 충분한 업적이
된다. 정걸의 철저한 유비무환 정신이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